2026년 1월 24일 KBS 1TV ‘다큐온’ 348회 “100년 전 그 목소리, 물불 이극로” 프로그램 소개입니다.

◆ K-컬처 이전, 100년 전 한국어의 위상 - 이극로의 선구적 노력
오늘날 K-컬처의 확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설립된 세종학당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보다 한 세기 전, 독일에서는 이미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강좌가 문을 열었습니다. KBS [다큐 ON]은 바로 이 강좌를 개설한 이극로 선생의 삶을 추적하여 우리나라 방송 최초로 조명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최초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심지어 프랑스 음성학 연구소에서는 '훈민정음 자모 체계'를 직접 녹음하여 남긴 그의 발자취는,
100년 전에도 한국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교육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인 선구적인 노력이었습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뜨거운 열정으로 조선어 지키기에 앞장섰던 '물불 이극로' 선생. 일제의 갖은 탄압과 압박 속에서도 조선어편찬사업에 매진했던 그의 이름은 왜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야만 했을까요?
◆ 프랑스 국립도서관 속 '100년 전 조선인의 목소리'
프랑스 국립도서관 음성학 연구소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100년 전 조선인의 생생한 음성이 녹음된 레코드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바로 "조선 글씨와 조선 말소리, 이 글씨는 홀소리 11자와 닿소리 17자로 모다 28자올시다. 아, 야, 어, 여"라고 또렷하게 발음되는 훈민정음 자모 체계 녹음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훈민정음 자모 체계 녹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0년 전 프랑스 파리까지 찾아가 훈민정음을 직접 녹음한 인물이 바로 이극로 선생입니다. 그는 왜 머나먼 타국 프랑스 파리의 음성학 연구소까지 가서 우리말의 기본인 훈민정음 자모 체계를 녹음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일까요?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우리말과 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모국의 언어를 보존하려는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선견지명 때문이었습니다.
음성학적으로 우리말의 특성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려는 그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 독일 훔볼트 대학, 최초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다
이극로 선생의 놀라운 업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독일 프로이센 시대의 중요 문서들을 보관하는 프로이센 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는 100년 전 독일에서 열렸던 한국어 강좌에 대한 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독일 훔볼트 대학에 유학 중이던 이극로 선생은 이곳에서 무려 3년 동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국가의 언어를 외국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강좌 개설에 그치지 않고, 한국어 강좌를 위한 한글 교재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는데, 당시 사용했던 한글 교재인 <허생전>은 현재 독일 훔볼트 대학 도서관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체계적인 교재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극로 선생이 얼마나 깊이 있는 학문적 통찰과 동시에 조국애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조선어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친 '언어 독립투사 이극로'
1912년 고국을 떠나 독일 유학길에 올랐던 이극로 선생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29년 귀국했습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조선어연구회에 가입하여 조선어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우리말의 근간을 다지는 <조선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은 거셌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극로 선생은 조선어학회 회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형인 6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일제 경찰의 잔혹한 고문으로 몸은 심하게 허약해진 상태였지만, 그는 굳건한 정신력으로 버텨냈고 감옥에서 해방을 맞아 석방되었습니다.
출옥하자마자 이극로 선생은 다시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함께 <조선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매진했고, 마침내 1947년, 사전 작업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조선말큰사전> 1권을 세상에 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날 노래>를 작사하기도 했던 이극로 선생. 이처럼 평생을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에 바친 그의 이름은 왜 오랫동안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것일까요?
아마도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그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을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위대한 헌신이 재조명되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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