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6일 KBS 1TV ‘한국인의 밥상’ 747회 찜하였도다 “뜸들이며 익어가는 맛, 찜요리” 프로그램 소개입니다.

◆ 찜요리, 우리 인생처럼 느리게 익어가는 맛의 예술
찜 요리는 뜨거운 김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면서 각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완성하는 전통 조리법입니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나 그 안에는 오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조리법은 우리 인생의 고난과 성취를 닮아 있습니다.
맵고 짠 시련을 지나 달콤한 열매를 맺는 삶과 같이, 찜 요리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통해 비로소 맛을 완성합니다. 이번 방송에서는 한국인의 인생사를 닮은 찜 요리의 진한 이야기와 풍미 깊은 한 상을 소개합니다.
◆ 경남 고성의 바다와 어머니의 손맛, 가리비미더덕찜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은 다도해의 고요한 바다를 품고 있는 어촌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허영숙 씨는 바다에서의 거친 노동과 혹독한 태풍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2003년 매미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도 슬퍼할 틈 없이 다시 바다로 나서 두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홍가리비 양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월은 가리비가 가장 달고 부드러워지는 시기입니다.
허영숙 씨는 가족을 생각하며 바다의 소울푸드 가리비미더덕찜을 정성스럽게 준비합니다. 오만둥이와 신선한 채소를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 찜통에 올리면, 김 속에서 부드럽게 익으며 감칠맛이 배어납니다.
또한 매콤달콤한 가리비초무침과 신선한 문어찜은 고된 바다 삶을 닮은 다양한 애환과 감사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성의 바다는 삶의 기쁨과 고단함을 모두 안겨주는 고마운 터전입니다.
◆ 경북 성주, 조상 지혜 담긴 등겨장과 진한 구수함의 맛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는 87세의 백말순 어르신이 오랜 세월 장을 담가오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등겨장’은 보리 타작 뒤 남은 등겨(보리 속껍질)로 메주를 만들어 만든 장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 버려지던 소재조차 아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씨간 사용하며 익혀낸 구수한 등겨장은 동네 어른들 사랑을 받던 소중한 밑반찬이었습니다. 백말순 어르신의 손끝에서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낸 등겨장은 찜 요리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합니다.
등겨장에 묵은 무장아찌를 깔아 쪄낸 ‘조기찜’, 장의 감칠맛이 골고루 배어든 ‘등갈비찜’, 채소찜은 담백함을 살려 등겨장의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등겨장은 한때 힘겨웠던 시절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온정 어린 음식으로 거듭났습니다.
◆ 경북 의성, 마늘 고장의 강인한 인생과 따스한 찜 밥상
경북 의성군 다인면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늘 산지입니다. 황경숙 씨는 스물세 살에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와 집 없는 설움과 여러 시련을 견뎌내며 영글어 온 삶을 살아왔습니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루어져 이제는 여유로운 추억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성 마늘처럼 강인하고 알싸한 인생을 닮은 음식들이 이 지역 찜 요리의 중심입니다.
과거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 준 ‘콩가루나물찜’은 고소하면서도 담백하며, 오랜 숙성의 깊이를 지닌 ‘묵은지 닭찜’은 얼었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함을 선사합니다.
마늘 기름 향 가득한 ‘마늘 쌈밥’ 역시 지역의 풍미를 고스란히 담아내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에게도 사랑받는 찜 밥상입니다.
◆ 찜 요리로 담아낸 인생의 희로애락과 따스함
이번 ‘찜하였도다’ 편은 찜 요리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지역의 역사와 삶의 애환,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담긴 깊은 문화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천천히 뜸들이며 익어가는 찜 요리처럼 우리네 삶 또한 느림과 기다림 속에서 진정한 맛과 가치를 발휘합니다.
찜 요리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지혜와 가족 간의 따뜻한 정,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한 선조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찜 한 그릇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따듯한 위로와 희망을 전합니다.